2016.08.22. 평화분과 2차 모임 회의록(요약)

추재훈/ 평화권이란 아직 세계적으로나 우리나라에서나 명확화되거나 성문화되지는 못한 권리다. 평화권은 평화적 생존권과 비슷한 말로, 우리나라에서는 2007년 평택 미군기지 이전 시에 크게 불거졌다. 최근 사드 문제를 보면서도 평화권이 주 이슈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평화권이 생존권까지는 가지 못한 것이다. 성주 주민들이 님비가 아니라 사드 자체에 대한 반대를 한다고 하는데, 며칠 사이에 제3후보지를 거론하면서 주변에서는 역시 님비였구나 이런 비판을 듣고 있다. 그런데 성주 주민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생존의 문제가 눈앞에 확 닥쳤기 때문이다. 9월부터 참외 농사를 시작해야 하고, 그런 생존의 문제가 있는데 외부에서 그저 비판만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즉 평화적 생존권이 아직 미약한 것이다. 평화권은 1970년대 이후 제3세계 빈국들이 경제적으로 발전할 권리를 주창하면서 함께 만들어졌다. 왜냐하면 제3세계의 빈곤은 강대국 중심의 세계정치에 기인하는 것이고, 강대국의 세계정치란 전쟁의 정치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군산복합체가 대표적인 사례다. 흥미로운 점은 평화권이 연대권, 발전권과 함께 논의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이는 현실정치의 벽에 가로막혀 있다. 미국 UN대표 측은 UN 비공식 석상에서 “평화권 합의되면 전쟁을 못하지 않느냐”고 직접적으로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관점에서 보면, 적극적 평화는 온 사회에 통틀어서 쓸 수 있는 말인데 우리나라에서 평화는 주로 통일, 분단, 북한 문제와 연관돼서만 많이 쓰인다. 평화에 대한 논의 자체도 부족하고, 외국처럼 평화권이 발전권, 연대권과 엮일 수 있지 않다. 왜냐하면 발전권, 연대권은 노동권이나 사회권 차원에서 주로 논의되기 때문이다. 헌법적으로도 논란이 있는데, 평화적 생존권에 대해서 헌법재판소는 인정과 불인정의 상호 배치되는 판례를 두 번 내놓았다. 민생 문제라고 하면, 민생은 단순히 경제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서의 느낌도 포괄하고 있다. 그런데 민생 문제는 평화 문제와 별개로 생각된다. 논의해야할 점은 왜 분단 문제와 안보 문제 혹은 평화 문제가 민생 문제인지를 이야기하는 거라고 생각된다. 박성준/ 사드와 관련해서는 신뢰 상실이 큰 이유다. 국민이 정부를 믿지 않는다. 그러니까 막 반대하고 나오는 것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국민이 뻔히 반대할거라고 생각하고 그냥 소통 없이 밀어붙인다. 민주적 절차가 없다. 개성공단 폐쇄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주민은 어차피 마음대로 하는 정부의 말을 듣지 않는다. 사드 제3후보지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아무 대책 없이 막 밀어붙이고 있었으니 제3후보지 문제가 나오고 우왕좌왕 하는 것이다. 전미영/ 궁금한 것이, 소극적 평화부터 하고 그 다음에 적극적 평화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지 않나. 그리고 사드와 관련해서, 외교적으로 사드가 우리 국익에 큰 도움이 안되더라도 우리나라가 강대국 갈등 속에 그럴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추재훈/ 소극적 평화와 적극적 평화는 맥락이 다르다. 소극적 평화는 군사 문제, 안보 문제에 더 관련된 문제고 적극적 평화는 사회를 아우르는 개념이다. 예컨대 전쟁을 하지 않는 나라의 사회는 평화롭다, 이렇게 말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전쟁을 하는 나라의 그 내부 사회는 다른 나라에 비해 무조건 평화롭지 않다고 말할 수도 없다. 김태훈/ 사드와 관련해서는 우리가 강대국 정치에 매몰될 수밖에 없다는 질문인 것 같은데 꼭 그렇지는 않다. 우리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다. 그런 경험도 있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시절이 그랬다. 한국이 하고자 하는대로 하니 다른 나라들이 따라와줬다. 그런 비전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멀리 가자면 과거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과 같은 비전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임지훈/ 적극적 평화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휴전 개념 속에 적극적 평화 논의를 하는 데엔 제약사항이 많다. 휴전, 즉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적극적 평화를 말하는 것은 무리다. 한반도의 평화는 국제정세에 크게 좌우되어 왔고, 적극적 평화는 세계정부라는 전제가 있어야 가능하다. 일제강점기 시절 지식인층이 평화를 말했었는데 그들은 대체로 한일합방 찬동론자들이었다. 즉, 적극적 평화는 자칫하면 민족자결권에 배치되는 등의 심각한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적극적 평화는 이해하되 잠시 보류하고, 힘의 논리를 없애는게 우선돼야 한다. 김태훈/ 그럼 말 그대로 소극적 평화밖에 안된다. 말한 것은 비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적극적 평화에 제약 사항이 있을 수는 있으나, 이를 타개할만한 비전을 가지고 외교도 운영해가야 한다. 가령 어차피 미국이나 중국은 한반도 평화에 반대한다. 긴장감을 끌고 가야 그들에 이익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평화의 당사자인 평화 얘기 안하면 아무도 하지 않는다. 이젠 우리가 해야 함. 추재훈/ 평화의 정의에 대해서 서로 몰이해가 있었던 것 같다. 임지훈 선생님이 말씀하신 평화는 소극적 평화에 가깝다. 적극적 평화는 정부 시책이나 정책이 아니라, 상태로서의 평화다. 가령 우리나라 대북정책, 통일정책은 지나치게 대통령의 철학에 좌우된다. 비민주적인 것이다. 이 비판에서는 참여정부, 국민의 정부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데 이것을 민주적 절차를 거쳐서 하게 되면, 참여정부나 국민의 정부가 했던 것만큼 전향적인 대북정책은 나기 힘들지라도, 그건 사회적으로 민주주의가 성숙한 것이기 때문에 적극적 평화에 한 발 더 나아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소극적 평화를 이루는데에도 기여를 한다. 창비 그룹에서 이야기하는 동아시아공동체론에서 백낙청 교수 이런 사람들도 같은 얘기를 한다. 마찬가지로 전 사회적 영역에서 사회적 민주주의, 소수자 배려, 성평등, 이런 것들을 말하는 것이 적극적 평화고, 이는 소극적 평화와 병행돼야 하고 상호연관성이 있다는 것이다. 허수영/ 다른 문제로 대북제재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대북제재가 한반도 평화에 기여했는가?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북한이 무언가 얻을 수 있는게 있다고 판단했을 때 핵이나 미사일 실험을 자제하고, 6자회담 결렬 이후에 핵, 미사일 기술이 고도화됐다고 지적했다. 대북지원이 핵개발하는 것과 관련이 없는 것이다. 오히려 비핵화와 관련이 있다. 한편으로 민간 차원의 남북교류는 지속돼왔다. 올해도 6월에 심양에서 6.15공동선언 남측 실천위가 북측 실천위와 만났다. 통일부는 이에 대해서 애초부터 허가를 해주지 않았다. 북측과 만난 남측 실천단은 이후에 과태료를 엄청 맞았다. 남측위원회에서는 남북연석회의를 준비하거나, 8월 14일에는 광화문에서 1000인 원탁회의를 하는 등 활동을 하고 있지만 정부는 이를 불허하거나 방해하고 있다. 사드도 마찬가지다. 성주 군민들이 사드배치 결정 초기에는 우리 지역에는 안된다는 입장을 많이 보였으나 최근에는 사드는 어디에도 안된다, 이런 식의 입장을 가진 군민이 증가했다. 세월호와 마찬가지로, 국가의 부조리한 시스템이 자기 문제로 다가올 때 대중은 급격히 각성하는 것이다. 특히 중국의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이 가속화될 경우 한반도 평화체제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대중에게 확산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와 관련해서 남북교류에서 민간단체의 역할이 무엇인지 이야기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북한의 의중에 대해서, 북한이 교류를 하더라도 이는 대화공세다, 이런 식으로 주장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에 대해서 어떻게 대답할 것인지도 생각해봐야 할 것같다. 추재훈/ 민간의 역할은 정부가 나서지 못하는 영역에서 활동하는 것, 즉 정부가 간섭하기 애매하거나 힘든 부분에서 활동하는 것, 그럼으로써 교류의 연속성을 키우고 지평을 넓히는 것이라고 본다. 2008년 이후에도 정부 차원의 교류가 끊겼지만 민간 영역은 2~3년 지속됐다. 이대로 가면 된다고 본다. 박성준/ 다만 신경써야 할 부분은 민간영역이 지나치게 많고 겹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남북교류 중 특정 분야에만 지나치게 많은 민간단체들이 몰려있고, 통제가 안되고 있다. 이는 정부에서 관리를 못하는 측면도 있다. 그런데, 핵심은 남북교류가 잘 돼야 이것이 정리될 필요성도 더 크게 생긴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교류를 전면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다. 나라에서 금지하면 할 수가 없다. 심양에서 6.15준비위가 북측 사람을 만난 것도 신고를 해야한다. 김태훈/ 국가보안법 상으로 북한 사람을 만나면 신고를 해야하지만 그렇다고 만나지 못할 것은 아니다. 법리적으로 보면 국가보안법에서 보는 것은 반국가단체의 사람과 만나더라도 이적행위 등의 행동이나 그런 것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굳이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 추재훈/ 북한의 의중을 알아야 한다는 건 필요없는 말이라고 본다. 대북정책은 우리가 펴는 것이지 북한이 펴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철학과 세실한 정책 계획이 짜여있으면 문제없다. 북한의 의중을 말하는 건, 주로 북한은 믿을 수 없는 나라다, 예측불가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특정 언론이나 특정 정치 세력의 프로파간다라고 본다. 허수영/ 그럼에도 대응은 필요하지 않나. 추재훈/ 북한의 의중을 말하는데 사실 우리는 다 알고 있다. 북한이 왜 핵을 개발하는지, 미사일 실험 왜 하는지 다 안다. 알 사람은 다 알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이 ‘핵개발은 안돼’ 이런 식의 원론적인 이야기만 하는 것이다. 거기에 북한을 믿을 수 없다고 살짝 추가해버린다. 북한의 의중을 어떻게 알 것이냐, 이 문제는 실제의 사례를 보면 된다고 생각한다. 가령 개성공단을 위해 북측은 군부대를 후방배치했고, 임금도 우리나라가 200불을 제시하는데 북이 먼저 50불로 하자고 했다. 금강산관광때도 군항이었던 장전항을 관광을 위해 민항으로 바꿨다. 파주에 남북 협력 공단을 만들 때 우리가 1사단을 후방배치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이 그 답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이는 교류를 계속 해야 나오는 사례다. 임지훈/ 우리나라에서 안보 안보 많이 말하는데, 잘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교류협력이 더 현실적인 안보정책이라는 점이다. 교류협력만큼 확실하게 안보를 보장해주는 것이 없다. 유럽연합도 그렇고, 경제협력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전쟁이 일어날 수가 없다. 최근에 생각해본 것은, 남북이나 다른 세계 여러 분쟁국들이 참여하는 다보스 포럼 비슷한 것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박성준/ 이 또한 신뢰의 문제라고 본다. 국가가 시민을 믿지 않고, 시민도 국가를 믿지 않는 것이다. 국가 정책에 있어서 시민들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전부 국가가 만든다. 협의라던지, 비판 이런 것들이 없다. 지방분권도 하나도 되어있지 않다. 가령 서울시에서 자기 예산으로 청년수당을 준다고 하는데 중앙정부에서 이를 막고 있다. 이것이 법적으로도 절대 가능한 일이 아니다. 임지훈/ 이는 모든 분과의 문제라고 보는데, 국가정책이 지나치게 국가중심적이다. 중앙정부의 권한이 지나치게 크다. 민간단체의 역할이 없다. 시민들이나 전문가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된 가운데 정책이 세워질 필요가 있다. 추재훈/ 독일의 경우 지방분권이 잘 되어있는 것이 좋다고 한다. 통일에도 큰 영향을 미쳤고 아까 얘기했던 적극적 평화랑도 관련이 있다. 가령 통일 이후에 동독 출신의 여성 총리가 어떻게 나올 수 있었느냐, 이것은 지방분권이 잘되어있고, 내 눈앞에 닥친 일들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가지기 때문에 사람들이 정치인을 뽑을 때 거대담론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지역을 위해 힘쓰는 정치인을 뽑을 수 있어서 가능한 것이었다고 한다. 전미영/ 저는 통일 이후 북한 개발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걱정되는 것은, 통일 이후 북한 지역에 자본이 지나치게 많이 몰리면서 북한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삶이 얼마나 황폐해질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들의 기존 문화가 파괴되고, 공동체가 파괴되고, 이런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는 점이 우려된다. 그래서 이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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